헤겔의 철학사상
1. 서언
헤겔은 1770년 독일 뷔르템베르크 고욱의 수도인 슈투트가르트에 태어나서, 5살에 라틴 하교, 7살에 김나지움에 입학했으며, 18살에 튀빙겐 대학 신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에서 2년 철학, 3년 신학을 공부했으며, 19살에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자 혁명을 열렬하게 지지했다.
그는 1793년 대학을 졸업 후, 1800년까지 프랑크푸르트와 스위스 베른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다가 1801년 셸링의 추천으로 예나 대학에서 1806년까지 강사를 했다.
그는 셸링과 교우하면서, “비판적 철학잡지”함께 발간하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1806년 그는 대작 “정신현상학”을 완성하여 예나를 떠나면서, 원고를 품속에 간직하고 다녔다.
그는 1808년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신문편집일을 맡아보다가 1816년까지 인문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41살에 결혼하고, 1812년 대작 “대 논리학”을 완성하고,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철학 교수로 임명되어 1817년 “소 논리학”을 완성했다.
그는 피히테의 후임으로 베를 린 대학의 철학 교수를 13년 동안 하면서,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 전역에 절대적인 권위를 얻고서 철학자로서 추앙받았다.
그는 “헤겔학파”라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면서, 1830년 베를린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논리학”의 수정판을 집필하던 중 사망했다.
2. 철학사상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은 셰링이 말하는 자연이나 정신은 본질적으로 같으며 다만 현상적으로만 다르게 보일 뿐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절대자를 정신이라고 파악하여 절대정신이라고 했으며, 역사란 절대자가 자신의 본질을 점차 명료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절대자인 절대정신은 이성이라고 파악하고 그 본질을 자유라고 점차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헤겔의 철학은 정신이 특별한 의미 가지면서, 정신을 자연보다 우위에 두고 그것이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과정을 묘사했다.
그는 세계의 진행 과정을 정신의 자기 전대의 3단계 과정을 1) 즉각적 단계로서 변화 이전의 상태이며, 2) 대자적 단계로서 정신이 시간과 공간 속의 자연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며, 3) 정신이 다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단계로서 즉자대자즉 단계라고 했다.
이러한 단계를 철학적으로 1단계의 과제는 논리학이며, 2단계의 과제는 자연철학이며, 3단계는 과제는 정신철학이라고 했다.
결국, 헤겔의 관념론 철학은 히테와 셸링의 관념론을 이어받으면서 완성 시켰다.
헤겔은 사물이 변화하는 운동을 세 단계를 거치는 주기적 운동이라고 보는 단계를 정립-반정립-종합의 과정을 밟는다고 했으며, 이 세 단계의 변증법은 정(正)-반(反)-합(合)이라고 했다.
이것을 인식 과정에 적용하며 다시 설명하면, 1) 하나의 입장을 일단 긍정한다. (정립) 2) 그다음은 이 입장 속에 어떤 모순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반정립) 3) 모순을 파악함으로써, 새로운 입장을 내게 된다. (종합)이 세 단계를 거치면서 인식보다 고도화된다.
즉, 종합의 단계에서는 앞 단계의 정립과 반정립을 적당히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인식으로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증법적인 과정은 인식의 과정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헤겔의 역사관에서도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세계정신이라고 했으며, 이러한 세계의 정신은 절대정신이 세계사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개개인의 인물은 결국 세계정신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고 했다.
즉, 역사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일체의 현상은 이성의 뜻으로서 이성의 간계(奸計)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했다.
결국, 모든 역사 속에서의 현상은 역사 이성의 반영으로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