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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사상

한국 사상의 유형

한국 사상(思想)의 유형

1. 사상의 개념

한국의 사상은 한국에서 생성된 한민족으로 형성되었으며, 한국의 철학, 종교, 정치, 사회, 경제 등을 포함하는 사상이다.

19세 기기 말, 이후, 서양철학이 전래되기까지는 철학과 종교는 엄격히 구분되었기 때문에 종교 사상이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다.

기도

한국의 사상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무속신앙으로서,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고유한 독자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무속신앙의 터전 위에서 외래사상인 유교, 불교, 도교, 천주교 등이 유입되었다.

이처럼 외래의 사상이 한국의 전통적인 사상으로 정착한 것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는 유교이며, 후기에 불교이었으나, 조선조에는 신유학인 성리학이 관학으로 통치이념이 되었다.

2. 사상의 유형

1) 무속신앙

 

한국의 무속신앙의 사상은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에서 그 뿌리를 두고 있으나, 한국의 독자적인 특성을 지닌 한민족의 원초적인 잠재의식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한국의 신화로서 대표적인 것은, 단군신화, 고주몽 신화, 박혁거세 신화, 석탈해 신화, 김알지 신화, 김수로왕 신화 등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신화들은 국조의 탄생과 건국과정에 주된 초점으로 한 결과이나 우주의 창조나 신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한국 무속신앙의 사상적인 특징은, 자연신들을 숭상함으로써, 다신론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천신, 태양신, 풍신, 우신, 운신 등을 믿는 것이다.

결국, 무속신앙은 역사적으로 화려하게 각광을 받지 못하였지만, 역사적으로 민족문화발전에 원동력으로 작용을 하였다.

2) 유교사상

조상숭배

서기전 12세기경에 중국으로부터 유교가 유입되었다는 것은, 기자(箕子)가 한국에 들어와 홍범구주와 정전법을 유교적 통치술을 폈다는 기록 때문이었으나, 대체로 학자들의 견해는 4.3세기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의 지명에 한자 사용을 본격화했기 때문이었으며, 삼국시대는 국사를 찬술하고 유교적 예속화로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였다.

이 시대의 교육은 유교적 교육에 의해 충효의 사상이 생활화 하였으며, 10세기 후반은 한국 유교는 관료제를 뒷받침해 주면서, 중세사회의 건설에 이바지하였다.

13세기 말에는 한국의 유학계의 독무대였으며,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통치 원리로써 20세기 초까지 도교, 불교, 무속신앙을 배격하였다.

17.18세기에 성리학의 현실감이 없어 격동 사회에서 융통성이 없어지자, 관념론적 비판을 받게 되자 실학이 대두한 것이었다.

3) 불교사상

 

한국의 불교는 372년 소수림왕 2년에 중국의 승려인 순도가 처음으로 고구려의 왕실에 불경과 불상을 가져왔다.

불교는 왕권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시키는데 영향이 미쳤으며, 불교의 사상은 정치, 사회사상적 측면보다 윤회설에 기초한 개인 수행과 극락왕생의 측면에 관심이 많았다.

백제시대는 겸직 등의 율종연구, 신라에서는 원광, 자장 등 점찰보, 세속오계, 포살 의식 등과 원효 등의 불교의 대중화로 아미타불 중심의 정토종 신안을 크게 일으켰다.

한국의 불교의 특징은 민주국가의 유지인 민족문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하였으며, 호국불교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은 탑, 사찰, 불상, 팔만대장경 등 불교예술품들은 국가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데 사용하였다.

4) 도교사상

한국의 도교의 도입은 643년 고구려 보장왕 2년이었으며, 그 이전에는 오두미교가 민간 사이에 유행을 하였다.

도교는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현세대 성향으로서, 산천과 일원 성신 등 자연신을 숭상하는 점에서 무속신앙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도교로서 신앙이 역사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는 고려시대로서, 풍수설에 영향을 받았다.

조선조에서는 도교가 성리학에 배척받으면서 피지배층의 사상적 성향을 매우 다르게 띠었으며, 지배층의 도교는 소박하고 주체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5) 실학사상

 

한국의 실학사상은 17세기 초에서 19세기 말 사이에 이러 난 유학 운동으로서,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들은 자신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하였다.

후기, 실학은 성리학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실질적인 학문을 추구해야 하는 의지를 표방하였다.

실학자들은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 등 그 정신을 역설하면서, 그 실천을 위해 현실적 태도 회복과 고증의 방법 등을 강조하였으며, 실학의 기본정신은 박학 정신으로서 백과사전적인 저술과 복잡한 학문체계를 이루었다.

실학은 실질적인 내용보다 명분과 형식을 중요시하는 성리학자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경험 위주의 인식론과 공리주의적 사회, 윤리관을 주장하는 실학사상이었다.

6) 천주교의 사상

천주교와 동학사상은 근대적인 사상적 조류로서, 종교 사상이라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천주교는 서양문화에서 들어온 외래종교 사상이며, 동학사상은 전통적인 자생적으로 등장한 신종교 사상이다. 한국의 천주교 사상은 17세기 초에 천주실의가 중국에서 간행되어 사신들에 의하여 전래되었다.

18세기 말에 종교적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들의 있었으나, 천주교 신앙을 수용하여 교회의 조직, 전파는 선교사의 포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색이 있었다.

1785년(정조 9)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여 관계 서적 수입 금지를 하였으며, 박해를 당하였으나.(신유 옥사, 기해사옥) 1882년 척화비가 철거되고, 1898년 공식적으로 선교가 공인되어 천주교 사상의 전파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천주교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전통적 가치관으로부터 이탈을 촉진시키고 봉건적 요소를 불식시켰다.

 

7) 동학사상

한국의 동학사상은 동학 농민혁명에서 자세히 기술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언급을 생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