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가시
소택 형은
선거 때만 되면 돈 때문에
여기저기 정신없이 다닌다.
누구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정치적 신념은 변치 않았다.
제8대 국회의원 선거가 공고되자 소택 형은 야당으로 몇 번 출마해서 낙선했지만, 다시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서 부장판사를 하고 난 후, 변호사를 하는 4촌 형이 갑자기 고향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했다.
소택 형은 33살부터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몇 번 야당으로 출마한 정치적 기반과 울진 장가의 씨족 기반을 바탕으로 4촌 형은 출마한 것이었다.
울진 장가는 울진 어느 성씨보다 많은 대성이지만 지금까지 국회의원 한 사람도 뽑지 못하고 다른 성씨의 권력과 돈 앞에 앞잡이만 했다.
장가 문중뿐만 아니라 지역의 모든 사람은 형제간에 둘이 나오면, 다 떨어진다며 힘없고, 돈 없는 소택 형만 양보하고 나오지 말라고 했다.
젊은 날의 소택 형은 결혼도 하지 않고 사법시험 포기까지 하고 정치적 삶을 살아왔으므로 양보하면, 영원히 정치적 생명은 끝난다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후보자 등록 전 날밤, 소 택 형은 내일 등록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후보자 등록 서류를 주면서 등록하라고 했다.
후보자 등록 날, 집안사람들과 청년들이 지구당 사무실에 와서 강제로 소택 형을 승용차로 납치해서 불영계곡으로 갔다.
이상할 정도로 소택 형은 조용한 마음으로 소란을 피우지 않고 마음속으로 동생만 후보자 등록할 것을 믿고 있었다.
울진 선거괸리위원회로 소택 형의 후보자 등록 서류를 갖고 가지나,, 이미 4촌 형은 후보자 등록을 마친 것을 알았다.
소택 형의 후보자 등록 서류를 가슴 품속에서 몇 번이고 손으로 넣다가 빼기를 반복하며 사무실 밖에서 왔다 갔다 했다.
억울한 감정과 생각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정치적 판단과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나이가 어렸다.
생각의 판단 그리고 선택은 소택 형을 후보자 등록하면 둘 다 떨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마감 끝나는 시간에 등록을 하지 않았다.
울진 군청 마당을 지나면서,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오는 데, 두 눈에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가슴속 깊이 있는 소택 형의 후보자 등록 서류를 집어내어 군청 탱자나무 가시덩굴 속 깊이 집어넣었다.
탱자나무 가시가 손에 찌러 피가 방울방울 나오는 아픔보다 소택 형에 대한 마음속 깊은 상처가 탱자나무 가시의 아픔보다 더욱 아팠다.
정치란 이런 것인가?
한없이 슬프고 허무하다.
욕심 없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흐르는 강물처럼 살 수 없는 것인가?
1975년 공무원사회의 서정쇄신 바람이 불어왔다.
선거에서 낙선한 4촌 형은 서울로 갔지만, 야당 정치하는 형들로 인하여 말단 면서기 공무원인 나에게는 많은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
지방공무원이 승진이나 군청발령은 황소의 힘이 작용했으나, 서정쇄신으로 인하여 군청이나 도청 전입은 시험을 치도록 했다.
마침 전입할 기회가 오자마자 나는 각 면의 많은 전입 희망자와 함께 주관식 시험을 쳤다.
면에서 근무하며 공부만 해온 나는 자신 있게 시험을 쳤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담당 행정계 알아보니 시험 결과는 1등이라고 했다.
상급 기관에 시험을 쳐서 전입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았으나 아무리 있어도 발령이 나지 않았다.
생각다 못한 나는 저녁에 부군수 집에 찾아가서 전입 시험이 1등이라는 데 발령이 언제 나느냐고 물었다.
너무 놀란 부군수는 아무 대답도 없자 나는 음료수 1통을 마루에 놓고 황급히 나와 버렸다.
얼마 지나게 되자 군청 양정계로 발령 나면서 한 직급을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