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지존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는 25살에 1869년부터 1879년까지 미젤 대학 고전문헌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879년부터 1889까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덕의 계보“, 선악을 넘어서”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건강이 안 좋아서 문장을 짧게 쓰면서 남들이 한 권에 쓸 수 있는 내용을 한 문장으로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철학의 역사에서 반전의 철학자이자 전복의 철학자이며 사람들이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하는 말을 서슴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의 인식론의 출발점은 원근법주이며, 이는 사실 혹은 진리라고 강조되는 요소들에 대한 일련의 부정적인 인식이며, 또한 진리 의지는 본질적으로 해석하는 기술일 뿐이라고 했다.
인간의 지성은 자신의 원근법의 형식 아래서 오로지 그 안에서만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모든 관찰은 그 관찰자가 위치한 좌표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모든 관찰은 그 관찰자가 위치한 좌표에 의해 결정되므로 결국, 모든 인식은 인식하는 자의 원근법에 제약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서양 철학 전통에 나타나는 선과 악의 가치 평가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려 했으며, 모든 도덕 감정이 인간의 동물적 . 생리적 충동 속에 포함할 수 있다고 했으며,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기존의 옳고 그름의 가치평가 구도를 좋고 나쁨으로 전환하려고 했다.
그는 도덕을 힘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했으며, 힘이 충만하여 향상되는 것을 느끼면, 그것이 선함이고 좋음이며, 힘이 빠져나가 퇴보하는 것을 느끼면 그것이 악함이고 나쁨이라고 했다.
악함과 나쁨이란 일종의 소화불량 같은 것이며 현재의 조건 속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만남이며, 다른 상황이나 내가 훨씬 강한 소화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악함 나쁨이 되지 않을 수 있으나 지금의 상태가 해로운 존재가 된 것이 바로 악함 나쁨이라고 했다.
그는 서구의 전통 형이상학과 종교적 절대 가치에 대하여 한마디로 “신은 죽었다.”하면서,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만이 아니라 모든 절대 이념을 가리키었으며, 그가 말하는 세계에서는 어떠한 절대적 초월적 진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최악의 적은 극복되어야만 하는 기존의 자기 자신이며,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했으며, 자신의 삶이라는 예술 작품을 조각하는 행위를 스스로 생산하는 예술 작품이라고 했다.
좋음이란 누군가로부터 부여된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어야만 하며, 이런 사람을 고귀한 인간이라고 했으며, 이 고귀한 인간에게 좋음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게 아니라 자기 본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여기서 고귀한 인간이란 귀족의 침착함을 지닌 강력한 인물은 자기 자신의 욕구에 따라 가치를 결정하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러한 인간은 고귀한 본성과 주인의 본성을 갖춘 인간의 공통된 특성으로서, 돈이나 재산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 충만하고 넘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헌신하며 베풀고자 하는 풍요로운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했다.
니체가 말하기를 “네가 다시 태어나기를 영원히 바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라.” 영원회귀에 의하며, 삶은 똑같은 방식으로 영원히 반복되므로 우리는 그것을 견뎌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은 미래로 이어지는 통로이자 과거로 이어지는 통로이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