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왕 순수비에 관하여!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척경과 순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서, 창녕 신라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국보 제3호), 마운령 신라 진흥왕 순수비, 황초령 신라 진흥왕 순수비 등이 있다.
순수비는 당시 왕을 수행했던 대등 등을 비롯한 신하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진흥왕은 540~576년 37년간을 재위하면서,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병합하여 한강 하류유역을 진출하여 서해안지역을 교두보로 확보하고, 동북의 함경남도 이원지방까지 정복하여 평창을 하였다.
진흥왕은 직접 순수하며 민심을 살피면서 국가에 충성과 절의를 바친 사람에게 공로의 포상을 선포하여 군신이 함께 경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었다.
이러한 순수비는 진흥왕 당대의 금석문 자료로서 “삼국사기”의 소략한 기사를 보완해 주어 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기여하였다.
1) 창녕비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으며, 건립연대는 561년(진흥왕 22)이었으며, 진흥왕이 창녕지방의 영토를 편입하고, 지역을 순수하면서 민심을 살피고자 기념으로 세웠다.
2) 북한산비는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비봉에 있으나 경복궁에 옮겨 보관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글자가 마멸되어 분명하지 않으나 진흥왕이 551년 백제의 성왕과 합세하여 고구려 점령지 한강유역과 상류지역을 차지하였다.
553년에 백제의 한강 하류지역을 빼앗아 신주를 설치함으로써, 신라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지 지역을 순수 관경한 것을 기념으로 세웠다.
3) 황초령비는 함경남도 함흥군 황초령에 있었으며, 건립 연대는 568년이었으나 1852년 (철종 3)에 관찰사 윤정현에 의하여 황초령 아래 진흥리로 옮겼다.
이 비는 진흥왕이 함흥지역을 순수하고 나서 군신이 모여 경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4) 마운령비는 함경남도 이원군 마운령에 있으며, 건립연대는 568년이며, 진흥왕이 이원 지방을 순행한 뒤, 군신이 더불어 경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이 비문에는 제왕의 건호, 짐, 순수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신라의 자존의식을 나타내었다.
이 시기의 마운령비와 황초령비가 소재한 이원지방과 함흥지방이 신라의 영토의 영역에 있었으며, 신라는 백제의 한강하류유역까지 빼앗고, 함경남도까지 북상하였다.
진흥왕 때의 신라는 정복적인 평창력과 고구려 및 돌궐족의 남하 압력의 위기에 북방개척에 영토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