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왕정의 엘리자베스 1세
영국의 절대왕정의 절정기를 이끈 처녀왕인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와 시녀 앤불린 사이에서 1533년에 태어났다.
그녀는 20살 무렵,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메리 1세가 반란협의로 그녀를 런던탑에 유폐했지만, 살아남아 1558년 메리 1세가 병사한 후,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녀는 즉위하자마자 영국의 독자적인 교회인 국교회의 손을 잡고 통일법과 수장법을 제정하여 국왕을 최고의 통치자로 했다.
그녀는 국교회의 기도법을 개신교 방식으로 통일시키면서, 국왕이 국교회의 최고 권력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헨리 8세로부터 시작된 영국의 종교개혁을 완성했다.
그녀가 기독교와 단절한 데에는 자신이 헨리 8세의 정통계승자임을 과시하기 위해서며, 기독교 교의를 따르면 그녀는 왕권을 인정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중앙집권화에 박차를 가해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더 나아가 대영제국의 기초를 쌓았다.
그녀는 기독교 세력을 일소하고 국교회의 나라가 된 영국은 기독교 국가인 스페인과의 관계가 좋지를 않았다.
스페인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네덜란드가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영국은 네덜란드를 지원하자, 스페인은 무적함대인 해군을 동원하여 영국을 공격했다.
영국군이 승리를 하자 영국은 해양제국으로 가는 길을 열었으며, 반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던 스페인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아래 신대륙으로 진출하여 1600년에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신대륙의 부를 유입하면서, 경제적으로는 그레셤을 기용해 중상주의를 추진했다.
여왕인 그녀가 특별히 신임한 신하 월트 롤리가 북미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엘리자베스 1세를 기리는 의미로 그곳의 이름을 버지니아라고 명명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69세에 사망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처녀왕이라 불리면서, 의회에서 “나는 영국과 결혼을 했다. “고 했다.
1603년 독신으로 죽고 난 후, 후계자가 없어 튜더 왕조는 단절되었으나 이후,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찰스 스튜어트가 뒤를 이어 제임스 1세가 되면서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