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정사 젊은 날의 슬픔 4
왕피천 흐르는 물 언덕 초가집 앞으로 수백 년 묶은 아름드리 소나무밭이 있고, 흰 밀가루 뿌리듯이 하얀 모래밭이 있다.
밤이면 중천에 뜬 상현 달빛은 한 아름되는 노송의 가지 끝에 매달려서 울면, 강물 건너 둑의 은행나무 밑에서 소녀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온다.
실낱 같이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소리에 그녀를 향한 나의 그리움은 목이 메이도록 울고만 싶다.
그 옛날이 그리워라.
꿈에라도 돌아갈 수만 있다면,
흘러간 세월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 그녀를 향한 마음 오래 간직하리라.
고등학교를 가정형편이 어려운 나는 울진 농고를 여학생이 없는 임업 과에 들어갔다.
농고에 들어간 나는 공부보다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했으며, 형이 군대에서 가져온 군화를 신으며 바리 재를 넘다가 학교를 가지 않고 친구들과 바리 재 중턱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까먹으며 산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날에 그녀를 향한 감정과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 불안한 마음은 어디로 튈지 언제나 방황하고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울진 농고 1학년이 된 나에게 젊은 날의 슬픔은 말없이 찾아왔다.
어머님은 생활의 고통 속에서 중병이 걸려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관계로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이 아픔과 고통을 견디어 냈다.
어머님의 중병을 혼자서 견디어 내기 어려워지자 돈 적게 드는 울진 시내 병원에 다녔으나, 의사는 대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돈이 없어도 큰 병원 한번 가서 진찰받아 보자는 생각에 절에서 사법시험 공부하는 소택 형이 어머님을 모시고 대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갔다.
소택 형은 사법시험에 1차를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치기 위해 절에서 공부하던 중에 어머님의 생명이 위급함을 깨닫고, 2차 시험 일자에 시험을 포기하고 병원에 어머님을 모시고 갔다.
대구에 있는 큰 병원에서는 고치지 못한다고 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동안 차디찬 대나무 자리 위에서 아픔의 고통을 참으며 견디다가 어린 나의 까까머리를 만지면서 조용히 운명을 했다.
어린 나를 두고 떠나는 어머님은 눈을 감지 못한 모습을 나 혼자만이 바라보면서 너무나 큰 충격에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세상은 돈 없는 가난한 사람의 죽음이란, 운명 앞에서 돈 없어 병원 한 번 못 가고 죽어야만 하는 사회를 원망했다.
2차 시험을 치지 못한 형은 다음 해에 2차 시험 응시를 한단 생각을 했으나, 다음 해는 2차 시험과목이 전부 바뀌게 되자 사법시험은 포기하고 말았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면서, 어머님이 죽어서 1년 만에 고독하게 살아왔던 부친은 비 오는 날 장독대에서 고혈압으로 쓸어졌다.
부친은 저녁에 먹다 남은 방구석에 소주병의 술을 마시고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눈을 감는 모습을 혼자서 지켜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한의사였던 부친은 세상에 남아 있는 어린 자식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죽음을 택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 죽음의 운명을 혼자만 지켜본 나는 골 원님 했다던 할아버지도 운명할 적에 혼자서 보고 있었으며, 그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달이 지면 해가 뜨고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겨울 지나면 새봄 오는데
젊은 날의 슬픔은 사라질 줄 모른다.
서울 장성들과 부자들만이 살고 있는 명륜동에 살고 있는 부장판사 사촌 집에서 연건동을 지나는 돌담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도로 옆 S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나의 꿈과 희망이었다.
울진 농고를 다닌 나는 부모님이 모두 안 있어, 자취를 하면서 큰 가마솥에 보리쌀과 꽁치 간수를 함께 넣고 생솔잎을 피우면, 부엌의 검은 연기로 얼굴은 땀과 눈물이 반반 썩여서 얼굴에 흘려서 내렸다.
생선 먹고 싶은 날은 울진 장날에 큰 광어 한 마리를 사서 부끄러운 마음에 책가방 속에 넣고 집에 돌아오면, 생선 물과 냄새가 책을 적시고 풍겨도 마음은 즐거웠다.
자취하며 학교를 가는 날은 언제나 지각했으며, 일주일에 영어와 수학이 1시간뿐인 농고에서 농업 시간에는 영어 수학 과목은 독학했다.
학교 자체시험은 시험 때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언제나 학급에서 3등 이내로 들어가서 학교 내는 학비는 면제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다른 친구들은 도시에 입시학원 다닌다고 하지만, 나는 나의 머리만 믿고 영어, 국어 등 외우는 과목은 교과서를 전부 무조건 외웠다.
특히, 수학 과목인 삼각함수, 미적분, 정적분 등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 문제지를 사서 풀어 놓은 방식을 그냥 그대로 외워서 원하는 국립대학교에 시험을 쳤다.
주관식 수학 문제는 생각과 달리 풀다가 답이 나오지 않아 국립대학교에 집에서 홀로 독학하여 두 번이나 시험을 쳤으나 입시에 원하는 대학은 떨어졌다.
결국, 나는 젊은 날의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서 시험을 쳐서 육군 기갑부대에 통신병으로 배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