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정사 전선을 지키는 밤 5
강돌로 높게 쌓아 올린 돌담 위의 가시철조망 사이로
개울을 건너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대남 방송 소리에
전선을 지키는 초병의 마음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뜬다.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을 끝내고 시험 봐서 기갑학교를 졸업한 나는 동기 한 사람과 제2 기갑연대 소속 기갑 중대가 있는 철원에 배치되었다.
기갑 중대에 배치된 나는 2.4 종 담당 병장의 조수가 되고 한 사람은 탱크 속의 무전기를 수리하는 통신병이 되었다.
기갑 중대의 2.4 종 고 참의 조수가 된 나는 언제나 배가 고파서, 견디기가 어려운 군대 생활이었다.
생각다 못한 나는 축구선수가 되면 굶주림에서 벗어날 것 같은 생각에서 기갑대대 축구선수 선발하는 기회가 오자, 밥을 마음껏 먹겠다는 생각에서 선수를 지원했다.
기갑부대 축구선수가 된 나는 합숙하며 고된 축구 연습을 하면서도 고 참들과 함께 먹고 잠자는 생활은 굶 주름을 면하게 되어 즐겁기만 했었다.
기갑부대 졸병 생활을 축구선수로 보내고 나서, 고 참 병사가 되자 중대에 돌아와서 나의 조수를 받았다.
기갑부대의 2.4 종 품목은 너무나 많았으나 나는 전 품목의 재고 수량을 모두 외워서 아침마다 회의 때 중대장에게 현황 보고를 했다.
중대장은 가끔 군화와 작업복 새것을 바꾸기 위해 불시에 군수품 보관 창고에 들어왔다.
중대장은 창고 문 열리자마자 재고 수량을 질문해도, 대장과 현황을 머리에 기억한 숫자를 정확하게 보고했다.
창고 안을 둘려서 보다가 책상 위에 영어책과 공부하던 다른 책을 보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중대장이 돌아가면 바로 중대장 당번을 통해 작업복과 군화를 새것으로 바꾸어 드렸다.
이때까지 제대하면, 대학에 들어간다는 생각에서 일만 단어 단어장은 항상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며, 군대 생활 일기를 쓰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고 참이 된 나는 시간 여유가 있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가끔 외출했다.
강원도 철원 평야의 한복판에 군용 식수를 저장해 두는 물탱크가 아닌, 옹기종기 초가집이 모여 살며, 군인들 상대로 술장사하는 곳이었다.
중대 내의 동료와 외출 할 경우는 모두 신바람 난 듯이 물탱크로 가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단임 여선생님이 결혼해서 철원서 선생님 하는 집으로 갔다.
선생님의 어린 딸들을 공부 가르친다는 이유로 가면, 사식도 먹고 아이들과 놀면서 지난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선생님과 함께 나누었다.
전방 기갑부대의 사병들이 외출해서도 어떤 군인들에게는 겁나는 것이, 없는 기갑부대의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전방에서 특수 교육을 받고 북한에 다녀왔다는 계급장 없는 요원들을 만나면 소리 없이 술자리를 피했다.
어느 눈 많이 오던 날 밤 친구들과 술집 골방에서 막걸리를 큰 독채로 떠서 마시고 있는데 그들이 왔다며, 술집 주인이 빨리 피하라고 했다.
화가 치민 나는 가죽장갑을 낀 주먹으로 술독을 한방 내리치게 되자 술독은 깨어지면서, 독 안의 막걸리는 방바닥으로 폭포수처럼 쏟아 내렸다.
탱크 전차병은 황색 머플러 얼룩무늬 옷
허리에 권총을 차고 탱크를 몰아붙이면
우렁찬 굉음 소리와 무한 괘도로 달리며
어두운 북녘을 향해 전선의 밤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