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정사 남영동 초대 12
정치적 자유는 공정과 정의가 구현되어야 하며,
개인의 자유는 법 앞에 합리적이고 평등하여야
시민의 가치가 존중되어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된다.
제5공화국 끝자락 무렵, 사무실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게 되자 여직원이 받아서 전화가 왔다며 건너 주었다.
전화기를 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장 선생이 아니냐고 묻게 되자 나는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되물었다.
거침없이 그는 남영동 W 반장이라고 대답하자 머릿속에서 생각난 것은, 신문 지면에서 유명했던 부천 성고문 사건의 고문 기술자가 떠올랐다.
무슨 일로 전화했느냐고 하니 만나서 할 말이 있으니 남영동 전철역 옆의 호텔 커피숍으로 나오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나갈 수 없다고 하자, 그는 화난 음성으로 그럼 사무실로 직접 모시려 간다고 했다.
사무실로 온다는 말에 생각나는 것이, 지난날 국장실에서 소택 형의 허리띠를 잡고 계단으로 끌고 내려가는 정보요원들의 만행이 생각났다.
직접 가겠으니 올 필요가 없다고 하며, 전화를 끊고 나서 동료 직원보고 내가 사무실에 오지 않으면 집으로 연락하라고 했다.
남영동 호텔의 커피숍에 도착한 나는 W 반장이 누구냐고 묻자, 키가 작고 당차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나에게 이름과 직장을 묻게 되자, 나는 사실대로 대답을 하자마자 옆 의자에 앉아 있는 키가 크고 건장한 두 사람보고 사무실에 모시고 가라고 했다.
덩치가 큰 두 사람이 앞서 길 안내를 하면서, 전철 옆의 검은 벽돌로 된 유리창이 없는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책상을 사이에 두고 한 사람과 마주 앉으면서, 난생처음 무슨 잘못을 진 것처럼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은 불안했다.
두 사람은 교대로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묻고 또 물었으나 나는 무조건 모른다는 말로 일관했다.
5공화국 말기 때는 이름 있는 음식점이나 여러 기관조차 정보요원들이 있어 말과 행동을 조심하던 시기였다.
그들은 내가 들어보지도 못했던 쿠데타 이야기와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물었으며, 내가 화장실에 가면 따라와서 뒤에서 지키고 있었다.
창문이 없는 화장실에서도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일시적인 충동으로 뛰어내릴 수 있겠다는 생각 했다..
계속 질문을 했지만, 사실에 관한 진실은 몇백 번 물어도 대답은 일관되게 아니라고 했지만, 거짓말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 말을 기억하지 못해 탄로 나겠다는 생각 했다..
두 사람이 협박조로 말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으나, 처음과 달리 마음은 편안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는지, 갑자기 W 반장이 나를 향해 대학원 수첩을 흔들며 주모자라며 소리치게 되자, 나의 마음은 다시 불안하기만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는데 검은 벽돌 건물 옆으로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여기서 나는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무실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직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벌떡 일어나서 의자에 앉은 나를 보고 일어나라고 했으나, 나는 앉아서 쳐다보기만 했다.
나를 보고 그는 큰소리 빨리 나가라고 말하고는 사무실에서 황급히 나가는 모습이 사무실 내에 불이나 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오늘의 일에 관하여 비밀을 지키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가라고 하자, 각서를 대충 쓰면서도 여유가 생긴 나는 시간을 끌게 되자 그들은 빨리 쓰고 나가라고 독촉했다.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데, 고문 기술자인 W 반장은 너는 직장에서 승진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의 꼬리가 내 뒤를 따라 나왔다.
남영동 검은 벽돌 건물로 초청받은 나는 밖으로 나와 정신없이 부천행 전철을 탔는데 전철은 수원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얼마 후, 남영동에 초청받은 그때 이미 야당 정치인으로 유명한 K가 잡혀 와서 심한 고문을 받고 있었으며, 내가 들어간 뒤에 서울 S 대학교 다니는 P군이 잡혀 와서, “탁! 치니 욱! 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언론 통해 알게 되었다.
이러한 엄청난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몸서리가 쳐졌다.
억울하게 목숨을 희생한 P군의 죽음으로 인하여 공정과 정의가 구현(具現)되지 않는 정치권력에 대하여 저항하는 민주화의 물결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 국토를 활활 타오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