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Stalin)의 정치사상(2)
2. 정치사상
스탈린(Stalin)의 혁명적 사고력은 좌익 반대파의 섬멸과 동시에 산업화에 박차를 가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경제적 필요성보다 정치적 기회주의를 우선시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1927년 말에 가격정책의 오류와 산업에 대한 불균형 투자로 농민들의 농작물을 국가에 판매할 동기가 악화되자 국가 전체 경제의 균형이 무너져 내렸었다.
그는 극단적인 정책을 도입할 정치적 계산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경제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 정치적으로 정해진 틀에 경제를 끼워 맞출 수 있다는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파괴적인 과격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온건파를 약화시키면서, 극단적인 정책을 통해 급진적으로 동원하는 레닌의 혁명 전략을 채택하였다.
그의 분파적 승리의 요인은 정적들의 실책도 있었지만, 다년간 권력 투쟁의 풍부한 경험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잠재적 지지자나 부동층을 합리적으로 포섭하고, 반대파에게는 무자비하게 숙청을 하였다.
그의 분파의 승리의 결과는 대약진 정책으로 계급전쟁과 혁명정신을 경제영역에 주입시켜 산업계획이나 제조업에 대한 자본투자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한계가 없었다.
산업에 필요한 투자는 얼마든지 확장하여, 서구의 장비를 대규모로 수입하고, 심지어는 공장 전체를 매입하여 자원들을 신속한 작동으로 대량의 상품을 생산하도록 하였다.
그의 약진은 전체 국민의 생활수준의 저하와 농촌 농민들의 고통은 심화되어 농촌이 나라의 근간이 아니라 정복하여 착취를 하여야 할 식민지 취급을 당했다.
그러므로 해서 농민들의 경제적 동기를 박탈당하여 매년 생산량의 급속히 하락을 하자, 곡물 징수에 무자비한 방식으로 조치를 하게 되자 정치적으로 위기에 직면하여 정치적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파와 정치투쟁을 하면서, 다양한 극좌파적 파괴적 정책에 대하여 자신의 논리를 펼치면서 지위를 상승시켜나갔다.
그의 정책의 변화는 농민의 토지를 몰수하고, 농민은 국가가 경영하는 농기업체의 노동자로 바뀌게 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의 정책의 변화는 “집단화” 방식은 대규모의 농민을 집단농장으로 강제 이동시키는 것을 전국에 걸쳐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는 권자에 오른 이후에도 붉은 군대의 승리로 히틀러를 굴복시키고, 일본과 개전함에 있어서, 미국과 소련의 장기적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대일전에 원조를 받은 기대를 하였다.
그의 많은 정치적 전략은 실제 또는 상상의 부역자에 대한 보복은 양날의 칼이었으며, 전쟁에서 극단적 폭력을 겪은 부역자에 대한 복수욕으로 군의 만행을 낳도록 하였다.
그의 영웅적인 행동은 책임과 공감, 품위를 얻는 반면에 범죄와 원한이 쌓이는 것으로 공존하였다.
전체주의 정권이 그렇듯이 그의 독재체제는 사회를 동원상태로 유지하면서, 외부의 적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하고, 국내의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을 딴 곳으로 돌림으로써, 정치목적을 이루는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반유대주의의 확산으로 유대인이 사회적으로 낙인찍기에 가장 편리한 표적이 되도록 하였다.
그의 정치권력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정점에 있을 때에는 권력을 향한 정치투쟁은 멈추지 않았으며, 부하들도 그다지 신뢰를 하지 않고 의심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권력투쟁의 중요한 변수는 건강악화였지만, 부하들에게 권한을 나누어 주어 업무량을 줄이거나 직무를 포기하지 않고, 통제의 고삐를 한 번도 놓지 않고 비밀경찰기관을 이용하였다.
그는 레닌과 마찬가지로 자기 후계자를 지명하거나 평화로운 권력승계를 위한 법률적 메커니즘을 마련해 놓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계자의 출현을 저지하고 정치적 무자격자인 자신의 동료를 주입하기에 전력을 다했다.
1953년 3월 2일 소련공산당 당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 사무국의 공식회의가 스탈린의 병세 악화로 인하여 참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집되었다.
이 회의에서 과거의 정치국이란 집단 체제의 복귀 상태에서 스탈린을 대신할 각료회의 의장직 위를 말렌코프가 맡았으나 후계자로 승인을 받지 못하고, 당중앙위원회의 총 간사 직위를 흐루쇼프가 되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공산당 통제 위원, 소비에트 연방총리,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했던 소련 최고 권력의 독재자인 스탈린은 1953년 3월 5일 딸 스베틀라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함으로써, 독재자의 꿈은 허망하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