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염세주의 또는 비관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1788~1860)는 폴란드 단치히(그단스크)의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선박 사업가인 아버지의 사업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방문해 각국의 언어에 능통했다.
그는 아버지 가업을 포기하고 학문적 재능을 따라 의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철학 저서를 인정받았으며, 자유에 관한 수필을 써서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그는 옛 방식을 고수하는 형이상학자로 우주의 근본이 되는 기저 원리를 밝히었으며, 철학에 관해서는 세계의 모든 본질을 추상과 보편, 개별 개념을 통해 다시 논하고, 그것이 반영된 이성의 명령을 따르는 영원한 개념으로 쌓아두는 것이 철학이라고 했다.
그는 저작 1818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출간된 책에서 “이성과 합리성이 현실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보는 칸트와 헤겔의 철학에 반대했다.
그의 방식대로 사고하려면, 인간 모두의 내면에 있는 근본적 원동력인 의지를 인식해야 했다.
그는 칸트가 말한 알 수 없는 물체가 바로 이성이나 합리적 목표가 완전히 결여가 된 의지로 봤으며, 그는 의지를 분화하지 않은 거대한 비인격적 존재라고 봤다.
의지는 인간의 모든 욕구와 본능, 욕망 이성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것의, 근거가 되는 힘으로 인간이 물리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실 의지의 표상이라고 했다.
인간의 행위와 믿음, 감정에 비합리적인 의지가 내재한다고 보는 일상적인 관념은 최근 수십 년간 정신 분석학, 예술의 비합리성,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에서 비합리적 의지를 강조한 것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예를 들면, 합리적 행위자의 행동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모형에 반대하면서, 사람들의 경제적 의사결정에 숨는 비합리성을 야성적 충동에 경제학자 케인스는 비유했다.
인간 삶의 형이상학에 관한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의지를 알아차릴 때 행동을 통해 내적으로 알아차리고, 지각을 통해 외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이 무대에 등장하면, 의지가 산산조각 나고 인간 주변의 객체가 분화해 결국 갈등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나면 사람들 사이의 긴장이라는 이해가 가능한 세계에 다다른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필요에 따라 몰려다니며 한데 모였다가 인간 본성과 특성 지닌 성가시고 불쾌한 지점들 때문에 서로를 밀어낸다고 했다.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려면 예의범절과 좋은 태도가 필요하며,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거리를 지켜달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염세주의를 명시적으로 논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존재와 살아 있음에 따라오는 고통,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의, 본성과 본능, 욕망에 내재한 고통을 이야기했다.
그는 플라톤 이후, 인간 삶에서 성적 욕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명시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유명한 찰학자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 욕망이 아름다움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으나, 쇼펜하우어는 해롭다고 봤으며, 인간의 삶은 성적 본능에 지배된 것처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성적 욕구가 가장 진지한 직업을 방해하고 아무리 뛰어난 지성인이라도 한동안 혼란에 빠뜨린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염세주의는 모든 인간, 모든 피조물은 결과를 얻으려 노력하지만, 목표한 결과를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한다.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고자 평생 자신에게 없는 뭔가 욕망하거나 욕망하던 것을, 손에 넣으면, 어느 쪽이든 고통에 시달린다고 했다.
인간은 욕망하는 것을 갖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욕망하는 것을 가진 뒤에 더는 욕망할 것이 없어 권태에 괴로워하므로 욕망은 괴롭고 욕망이 없음은 고통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의지를 인간의 몸과 인간이 자아라고 여기는 것을, 비롯한 모든 것의, 근간 이루게 되는 실체라고 했다.
” 인간은 해변의 조약돌이 되어 파도에 씻겨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