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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역사

세계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

세계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에 관하여!

전쟁

1. 서언

 

20세기의 전쟁 중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였으며, 그 영향도 너무도 컸으며, 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은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문화에 걸쳐서 국력을 총동원했기 때문에 전면전이었다.

이러한 전쟁으로 인하여 희생과 파괴, 심리적인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전쟁 후에도 평화유지를 위한 운동도 강하게 일어났으며, 국제연합(유엔)으로 구체화되었다.

20세기의 특성은 유럽의 역할이 축소된 가운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산업사회의 발달로 대중적 민주주의 발달과 이에 상응한 전체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시대의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역사이었다.

 

2.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은 19세기 후반 유럽의 국제질서가 가져온 필연적인 충돌로서 본질적으로는 유럽에서 시작된 유럽 국가들의 대전이었다.

전쟁의 요인들은 프랑스와 독일의 전통적인 갈등, 영국의 대륙과의 관계, 러시아의 민족적 목표 등과 같은 국제정치적 요인과 세기말 사상, 사회적 진화론, 인종우월주의 사상적 요인, 자본주의 발달, 시장 확보를 위한 식민지 쟁탈에 따른 경제요인 등이었다.

유럽의 주요 국가 수도에서 사람들은 정부가 선전포고를 하자 많은 사람들은 환호를 하며 전쟁에 대한 많은 기대를 하였으나 4년 동안 긴 세월에 수많은 인명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승전국이나 패전국도 다 같이 손실을 입었으며, 전쟁 후에는 세계가 직면하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혼란을 겪게 되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는 모두 27개 국가로서,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등 독일 측의 2천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였으며, 연합군은 세계 최강의 해군력 가지고 있었으며, 수적인 면이나 자원에서 우세했으나 훈련, 장비, 지휘 계통 등이 독일 측이 우월했었다.

전쟁의 교착상태가 지속되자 평화를 바라는 일반시민의 정서에 호응하여 평화 교섭과 싶애를 거듭하였으나,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사건 중의 하나는 러시아에서 인명손실, 물자와 식량부족, 패전의 좌절감 등으로 군대와 일반 민중에서 반정부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유럽의 내전으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전쟁 초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참전하고 최종국면에 접어들면서, 1917년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미국은 애당초 유럽 사태에서 전통적인 중립정책을 시행하려고 했으나, 러시아의 혁명으로 인하여 국면전환과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작전 때문에 중립을 지킬 수 없게 되자, 1917년 4월 6일 미국은 독일 측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미국의 참전을 하게 되자 영국이나 프랑스가 연합국이라는 명칭으로 참전하게 되어 민주주의라는 공통적인 유대와 경제적 이해관계로 미국과의 연합을 하였다.

연합군인 미국, 영국,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버티지 못하고 연합군에 1918년 9월 28일 휴전을 제의하여 11월 11일 오전 11시에 휴전을 하게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은 공식적으로 끝이 났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은 일반 시민들의 생활에서 심각한 영향과 막대한 인명 손실과 건물과 토지와 자원 등의 경제적인 영향이 미쳤다.

 

3.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세계대전에 비해 더욱 큰 세계적 구모로 확대된 전쟁이었으며, 새로운 무기사용과 인류문명을 파괴한 역사상 광범위한 전면전쟁(total war)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침략 국가들의 공통점은 선전포고 없이 기습공격에 의존하여 전쟁을 시작하였으며, 독일은 용의주도한 계획으로 준비를 하여 기갑사단이 1939년 9월에 예고 없이 전격전을 개시하여 폴란드를 공격했다.

독일의 기대와 달리 전쟁은 장기전이 되면서, 서방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희생을 치르지 않으려고 프랑스 등은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를 하지 않았다.

1939년 11월 핀란드는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영토를 할양하고 주요 전략기지를 소련에 조차하고 말았으며, 1940년 4월 히틀러는 중립국 덴마크를 침공하여 하루 만에 굴복시키고 나서 노르웨이의 중요 전략기지를 점령하였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중립국인 네덜란드, 벨기에를 함락시키고 룩셈부르크를 공격하고, 6월 5일 프랑스를 공격하여 1주일 이내에 파리를 함락시켰다.

무솔리니는 6월 10일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하고 6월 16일 항복을 받았으며, 이로서 프랑스 국토의 5분의 3은 나치 점령 하에 들어갔다.

유럽 대륙의 해안선은 노르웨이에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영국은 독일의 항만, 조선소, 비행장, 도시 등의 공격을 받았으나 1940년부터 1941년 6월까지 살아남았다.

무솔리니는 1940년 10월 그리스에 침략을 했으나 실패를 하고 아프리카 전투에서도 실패를 했으나, 소련은 독일과의 협정조건을 내세워 루마니아로부터 베사라비아를 획득하였다.

 

소련은 독일과의 협정을 계기로 폴란드를 진격하여 핀란드 일부 합병하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편입과 베사라비아 및 북 부코비나 합병 등성과를 거두었다.

독일군은 1941년 6월 22일 선전포고 없이 발트해 여안과 흑해 연안에서 소련의 국경을 넘어서 침공을 하여 과거의 소련 위성국가인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독일의 위성국가를 만들었다.

1939년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한 유럽전쟁은 1942년경부터 북아프리카, 아시아에까지 확대되었으며 미국이 참전하는 세계의 전쟁이 되었다.

1941년 8월 처칠과 로우즈벨트는 대서양 헌장을 기초를 하여 미국은 형식상 교전국이 아니었으나 실질적으로 교전국을 되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끌어들인 결정적이 사건이 되었으며, 1931년부터 1941년 10년간 일본은 꾸준히 아시아를 침략을 계속하였으며, 1931년 만주 공격, 1937년 중국과의 전쟁. 1941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점령 등 침략행위를 계속하였다.

미국은 영국 및 그 연방 국가들과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와 함께 일본에 선전포고를 26개국이 하고, 독일, 이탈리아가 일본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펴게 되었다.

연합국은 1942년 1월 대서양 헌장의 준수를 서약하고 스스로 국제연합이라 칭하였으나, 일본은 1월 내에 필리핀의 마닐라, 웨이크, 괌, 홍콩 등을 점령하고 1942년 태평양의 영국과 미국의 기지를 모두 점령을 하였다.

일본군은 싱가포르, 네덜란드령 동인도, 말레이야 미얀마 등을 점령하고 오스트레일리아를 침공할 태세를 취했으나, 미국은 1942년 여름부터 해. 공군을 증강하여 태평양지역을 공세를 취하여 광범위한 공격으로 성공을 하였다.

 

1942년 11월 미국 아이젠하워 장군의 총지휘로 미국과 영국의 합동작전으로 모로코와 알제리에 상륙하여 독일의 아프리카 군단을 공격하였다.

1943년 독일군이 항복을 했을 때 독일군 30만 가운데 3분의 1 가량 이탈했으며 독일은 자기 나라 국경을 지키는데 급급한 상황이 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여 폐허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핵 낙진으로 후유증을 남기게 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은 연합국의 승리고 끝나면서, 전후세계의 구상은 카이로에서 포츠담에 이르는 회담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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