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무지의 추억
소낙비 쏟아지는 여름날에
물 언덕 위의 외로운 나는
목이 터지도록 불려보아도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속으로
광장에 비둘기 떼가 앉듯이
가슴속에는 고독만이 쌓인다.
1970년 여름날 기갑부대에서 제대한 나는 고향마을 오미산 물 언덕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 모두 없는 왕대밭 고향집에서 소택 형은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정치를 하겠다며, 30살에 창당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군대 생활을 마친 바로 위의 형은 제대하고 난 후, 자취하면서 농사 일을 하다가 논에서 쟁기가 부러지자 그냥 팽개치고 부산 합판공장에 취직한다고 고향을 떠났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형은 너무 잘생겨서 주위의 사람들이 영화배우를 했으면 좋겠다며 칭찬했으며, 성격도 인정이 많았다.
물 언덕집에 제대하고 돌아온 나는 생각과 마음이 불안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바람부는 물 언덕에 홀로 앉아 지난날 가슴속에 구겨진 추억의 꼬리를 실타래 풀 듯이 한 올씩 풀어 보았다.
주천대 강물 얼어붙은 긴긴 겨울밤이 새도록 삼베길쌈 입에 물고 흔들리는 이빨로 뜯어가며 무릎이 까지도록 비비시던 나의 어머니!
왕피천 흐르는 물 언덕에서 대나무 낚싯대로 지렁이를 미끼로 모래무지를 함께 낚아서 올리며 좋아했던 첫사랑 그녀!
그녀를 향한 나는 모래무지와 같은 바보 같은 추억의 사랑이었다.
보얀 귀밑 아래 솔잎 같은 단발머리 결에 찰옥수수 알맹이처럼 하얀 치아를 보이며 환하게 웃어주던 그녀를 바보처럼 너무나 좋아했다.
강물 모래 밑에 살아가는 모래무지는 낚시미늘에 걸리면, 줄에 매달려 버둥거리다가 강물에 떨어져도 다시 먹이를 보면 물어버리는 바보 같은 민물고기가 되어도 그녀를 좋아했었다.
물 언덕 집에 제대한 후, 자취와 공부를 하면서, 모래무지의 바보 같은 첫사랑 추억으로는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다.
감정과 생각은 육체의 성장에 따라 나에게도 변화가 오면서, 추천대 강물 건너 마을 주일마다 징검다리 건너 샘실 마을교회 예배를 보려고 오는 나보다 2살 적은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교회 예배 장소에서 바로 뒤에 앉아 머리 숙여 있으며, 신도들이 이상한 듯이 나를 훔쳐보곤 했다.
교회 예배 시간이 끝나면 교회 앞마당에 나무가 있는 우물가에서 그녀는 친구들과 모여 놀아도 나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그녀가 논길 따라 강 건너서 집에 돌아갈 때는 그녀 뒤로 내 마음 따라 보내면, 외로움과 안타까운 내 마음을 바로 뒤돌려 보냈다.
껍질뿐인 그녀를 향한 나의 짝사랑은 뻥! 뚤어 버린 가슴속으로 소리치며 바람 소리만 지나갔다.
부산서 합판공장에서 일하는 형의 집에서 대학 시험공부하겠다는 결심에 몇 권의 책을 가지고 부산시 감만동으로 무작정 갔다.
형은 감만동 산비탈에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합판공장에서 고된 노동일을 하다가 동료의 소개로 미용사와 결혼했다.
단칸방에 형과 같이 생활할 수 없다며, 형수가 감만동 산꼭대기에 방 하나를 얻어 주어 학원도 가지 않고 홀로 독학하며 입시 공부를 했다.
추운 겨울날은 언제나 형수는 연탄불을 피워서 매일 연탄불이 꺼지지 않도록 연탄불을 가려주었다.
형수의 고마운 마음은 언제나 섭섭한 일이 있어도 그때의 형수를 생각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