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철학사상
1 서언
맹자는 공자가 죽고 난 뒤 약 100년 지나서 오늘날 산둥성의 추현 지방에서 노나라 귀족 맹손 집안에서 천축 시대의 대혼란기에 태어났다.
이름은 가(軻)이며,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에 남다른 열정으로 세 번이나 이사했다.
학교 공부를 몇 년 한 후,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화에 들어가서 수학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배우며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고자 목표를 삼고 노력했다.
경서를 통달한 맹자는 고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기세를 올리자, 이를 타파하고 자신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키 위해 유랑의 길을 떠났다.
40살에 추나라의 객경(客卿)이 되었다가 이후 제나라, 송나라, 등 나라를 거쳐 53살 양나라로 갔다.
양나라에서 맹자는 혜왕에게 왕이 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면, 신하나 백성들도 자기 집의 이익만 생각하게 되어 서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싸우게 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맹자는 혜왕에게 백성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도덕으로 선정을 베풀라고 역설했으나 약육강식의 시대에 혜왕은 귀담아듣지 않고 죽게 되자 뒤를 이언 양왕이 인물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양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다.
제나라의 선왕은 맹자의 명성을 듣고 반겨 맞이하였으나 맹자의 이상적인 이론이 관철되지 못하자 결국, 제나라롤 떠나 26년간의 긴 여로를 끝내고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307년 65살에 고향에 돌아와서 후진 교육에 힘쓰면서,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여 “맹자”를 저술했으며, 기원전 289년 83살에 고향에서 사망했다.
2. 맹자의 철학사상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여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실천의 원리를 마련하려 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다는 설, 둘째, 인간의 본성은 선해질 수도 있고 악해질 수도 있다는 설, 셋째, 어떤 사람들의 본성은 선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본성은 악하다는 설이다.
첫째의 입장은 고자의 견해로서, 사람의 본성은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이므로, 사람의 본성이 착하고, 착하지 아니함에 구분이 없는 것은, 물이 동쪽과 서쪽이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인의를 행할 수 있는 본래의 덕성이 있다고 했으며, 이러한 본성은 선한 것으로서, 본성에 내재한 “인의”의 덕성을 잘 간직하고 키워서 꽃을 피울 때 성인군자가 된다고 주장했으나, 맹자의 성선설이 모든 인간은 성인처럼 선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는 도덕성을 발현하는 4가지 단초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측은해하는 마음,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의 단초요, 브끄러워 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초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초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초라 했다.
사람이 이 4단을 가지는 것은, 사람이 사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은 4단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현시킬 줄 안고 했다.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이 4단을 가지고 있으며, 4단이 충분히 발현될 인, 의, 예, 지의 네 덕이 된다고 강조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짐승과 구별되는 인간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생활하면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하며, 인간은 반드시 따라야 할 인륜이 있다고 했다.
그 인륜은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봉우 유신 등이면, 이러한 인륜은 바로 국가와 사회 속에서 실현된다고 했다.
맹자는 인륜과 국가의 관계를 정치사상의 요체라고 했으며, 인륜을 실현시키는 국가는 당연히 도덕적 제도여야 하며, 국가의 통치자 역시 도덕적 지도자로서 성인이어야 한다고 했다.
성인이 왕이 되면, 그 정치는 왕도정치로서 도덕적인 교화를 통해서 백성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왕이 도덕으로 정치하지 않고 힘과 권력만으로 정치할 경우에는, 맹자의 혁명론 근본정신은, 정치란 철저히 백성이 귀하며, 국가는 그다음이며, 구주는 가볍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