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독재자 푸틴의 정치적 위기
군사 반란의 원인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독재 집권 권력은 23년 만에 최대의 정치적 리더 십의 굴욕을 안겨준 사건이 일어났다.
러시아 용변 부대의 수장 프리고진은 잡범으로 1990년 출소하여 수퍼마겟,, 시당 등을 차린 뒤 푸틴 대통령과 고향(상트 페테르 부르즈)이 같아서 인연을 맺어 신흥재벌이 되었다.
그가 창설한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일선에 병력을 투입하여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 탈환에 공헌했으나 탄약과 임금을 지원하지 않았다며,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를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국방부 장관은 모든 비정규군은 정식 계약체결을 지시했으나 프리고진은 거부하면서, 반란 위협을 가하게 되자 체포 명령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 후, 러시아 정예 군으로부터 미사일 급습받아 많은 전투원을 잃었다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나 오히려 내란 선동 협의를 받게 되자 우크라이나 작전 병력까지 모스크바로 진군하게 되었다.
2. 모스크바 함락 위기
바그너 그룹 용병들은 애국 집단을 자처하며 하룻밤 새 1,000 키로 미터 달려가서 모스크바 심장 약 200200킬로 미터 턱밑까지 진입하였으나 푸틴은 속수무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이 뚫지 못한 모스크바를 용병부대가 함락시킬 절대 위기 상황이 되었다.
모스크바는 최고의 긴장감 상태에 달하자 붉은 광장 등 주요 시설은 폐쇄시키며, 시민들의 통행 자제와 위험을 막기 위해 휴무일까지 지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반격 기회를 노리며 러시아를 두려워 말고 단결하여 맞서자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3. 일일 천하로 종결
러시아 용병부대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은 모스크바 남쪽까지 접근하였으나 막판에 알렉산드로 루카션코 벨라 루스 대통령과 회담으로 인하여 극적으로 반란을 중단하게 되었다.
정치적 리더 십에 굴욕을 당한 푸틴 대통령은 배신자 바그너 수장 프리고진과의 겉보기에는 협의하여 1일 만에 안정을 찾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정치적 위험 상황을 만든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고 살해하거나 러시아를 도망가지 못하게 할 것이며 내부적으로 무장 반란의 배후 세력에 대한 숙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란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은 점령지인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를 철수하면서 주민들로부터 환송받았다.
4. 결론
러시아의 푸틴 정권은 23년간 독재 정치권력을 잡고서 전쟁만 벌이다가 내부적인 군사 반란과 민심의 이탈로 정치권력이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정치권력의 도미노 현상으로 중국의 시진핑의 군사 독재 권력과 북한의 김정은 세습 독재 권력도 무너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