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철학사상
1. 서언
공자는 오늘날 산동성에 해당하는 노나라에서 태어났으며, 본 이름은 구(丘)이며, 자는 중니(仲尼)로서 성인식 후의 부르는 이름이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기 좋아해서, 15살에 자신 삶의 방향을 학문에 뜻을 두고, 30살에 학문의 기초를 세웠으며, 40살에 분별 있게 행동하며, 50살에 하늘의 뜻을 알았으며, 60살에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 들었으며, 70살에 뜻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데 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50살에 왕권이 쇠약해도 노나라의 치안을 담당하는 공직을 맡아서 치안 질서를 잡는 데 성공하자 사법부의 총수 다사구에 임명되었으나 노나라 왕의 방탕한 생활에 실망하여 그 직책을 그만두었다.
55살에 몇 명의 제자들과 14년간을 위, 진, 송, 초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며, 67살에 노나라 왕의 부름을 받아 돌아왔으나 시기하는 관료 때문에 좌절을 겪었으며, 하나뿐인 아들과 가장 총애하는 제자 아연을 잃어 실의에 빠졌으나 이러한 고통의 나날을 학문과 교육에 힘을 쓰며 마음을 달랬다.
공자의 제자들은 3천 명에 달했으며,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사상인 언행을 모아 기록한 것이 “논어”에 있으며 공자는 73살에 사망했다.
2. 공자의 사상
유교 또는 유학은 종교가 아니라는 사상이며, 유학은 학문의 일종이라는 의미 가지며, 유교라 하면, 가르침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중국의 여러 사상과 구분하여 유가 사상이다.
유교 또는 유학, 유가 사상은 공자가 창시했다고 하지만, 전적으로 새롭게 사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은 기술할 뿐이지 무엇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했으며, 공자가 유가의 시조로 된 것은, 당시의 학문을 집대성하여 체계를 세우고 내용을 새롭게 해석하고 수많은 제자가 공자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다.
공자 이전부터 중국의 고전들이 전래대서 왔던 대표적인 고전은 6경(역, 시, 서, 예, 악, 춘추) 등에 있으며, 특히 역경, 시경, 서경을 3경이라고 했다.
공자 이후에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4서가 유학의 주요 경전으로 추가 되었으며, 춘추시대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인륜의 도가 상실된 데에 있다고 보고, 도덕을 올바로 세워야 하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가장 중요한 윤리 덕목은 인(仁)이라고 보았다.
일한 인은 윤리사상과 정치, 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개념으로서, 인간다움을 뜻한다고 하며, 인을 실현하는 주체는 바로 “나‘이며, 나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인의 근본은 부모에 대한 공경과 형제에 대한 우애라고 했으며, 개인의 덕으로는 인 외에 의(義)로서, 이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무조건으로 해야 하는 당위적인 덕목이라 했다.
인의 실천은 곧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에 대한 철저한 배려로서,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베푸는 적극적인 측면과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소극적 측면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적극적 측면은 충(忠)이며, 소극적인 측면은 서(恕)로서, 타인에 대해서 인을 실천하는 자세를 충서 원리라고 했다.
공자는 정치란 이름과 실제가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며, 정치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각자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화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름을 바로잡은 정면론이라 했으며, 이는 자기의 이름에 부끄럼이 없도록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념이라고 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덕으로써 정치하는 것은, 뭇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 것과 같다고 했다.“
덕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법으로 통치하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했으며, 나라를 법으로 형벌을 다스리면 백성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덕으로 지도자가 예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정을 수치로 여기고 바른길로 나간다고 했다.
공자는 정치를 예로 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예는 사회규범이지만, 개인의 행동은 양식이므로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은 예로 조절되어야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룬다고 했다.
공자는 예는 인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자신의 본성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라고 했다.
정치를 예로 해야 한다고 한 것은, 정치란 인을 구현하기 위햔 수단이므로 남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사상이라 했다.
결국, 공자의 철학사상은 논리적인 체계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현실적으로 난세를 구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절박한 과제가 시급했다.
공자는 유가 사상의 시조이면서 전체라고 할 수 있으며, 2천5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중국뿐만 아니라 동양 세계의 지배적인 동양사상으로 형성되어 왔다.